2016.09.04 / 松山善三さん逝く(마츠야마 젠조씨 죽다)





松山善三さん逝く

   はなはだしい「格差婚」である。雑用に追われる若い助監督松山善三さんの月給は1万2500円。妻の俳優高峰秀子さんの出演料は映画1本で100万円級だった
   中学生のころから高峰さんにあこがれ、ブロマイドを持ち歩いた。友人に誘われて脚本家の卵になり、撮影現場で高峰さんと出会う。「高峰さんと付き合わせてくだログイン前の続きさい」と監督に頭を下げると一喝された。「身の程(ほど)を弁(わきま)えなさい」(斎藤明美著「家の履歴書 文化人・芸術家篇」)
   初デートは銀座の高級料理店。並んだナイフやフォークを見て「使い方がわからない。先に食べてください。真似(まね)しますから」。正直さが高峰さんの心をつかんだ。1955(昭和30)年に結婚する
   芸能マスコミからは「3年ともたないのでは」とささやかれたが、屈指のおしどり夫婦となった。松山さんのエッセーを読むと、えぐみも含んだ深い愛情が感じられる。妻を「負けず嫌いで、頑固一徹、明治生(うま)れの爺(じじ)ィに似ている」と評しながら、同時に「大恩人」とあがめていた
   監督として弱い立場にある人々の命が輝きを放つ映画をいくつも残した。デビュー作「名もなく貧しく美しく」では耳の聞こえない夫婦の暮らしを描いた。「典子は、今」は薬害により生まれつき両腕を持たない女性の歩みを追って大ヒットした
   高峰さんが旅立って6年、松山さんが亡くなった。91歳。いまごろは、水入らずの時を楽しんでいるにちがいない。「格差」を補って余りある夫婦愛だった。




마츠야마 젠조 씨 죽다

   대단한 격차 결혼이다. 잡일에 쫓기는 젊은 조감독 마츠야마 젠조 씨의 월급은 12500. 아내인 배우 타카미네 히데코 씨의 출연료는 영화 한 편에 100만엔급이었다.
   마츠야마 씨는 중학생 시절부터 타카미네 씨를 동경하며 브로마이드를 갖고 다녔다. 친구의 권유로 각본가 연습생이 됐고, 촬영장에서 타카미네 씨를 만난다. [타카미네 씨와 사귀도록 해주세요]라고 감독에게 머리 숙여 부탁하자 감독에게 크게 한 소리 들었다. [분수를 알도록] (사이토 아케미 저서 [집의 이력서 문화인예술가편])
   첫 데이트는 긴자의 고급 음식점. 나열된 나이프와 포크를 보고 [사용법을 몰라요. 먼저 드세요. 따라할테니.] 그 솔직함이 타카미네 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55(쇼와 30)년에 둘은 결혼한다.
   예능 매스컴은 [3년도 못 버티는 거 아니야]라고 수군거렸지만, 둘은 굴지의 잉꼬부부가 되었다. 마츠야마 씨의 에세이를 읽어보면, 아린 맛을 포함해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 아내를 [지기 싫어하고, 고집불통, 메이지 시대에 태어난 할아버지랑 비슷하다]라고 평하면서, 동시에 [대은인]이라고 받들었다.
   감독으로서 어려운 사람들의 생명이 빛을 발산하는 영화를 몇 개나 남겼다. 데뷔작 [이름도 없고 가난하며 아름답게]에서는 귀가 들리지 않는 부부의 생활을 그려냈다. [노리코는, 지금]은 약물 피해로 인해 선천적으로 양팔이 없는 여성의 걸음을 쫓아 대히트했다.
   타카미네 씨가 떠나고 6, 마츠야마 씨가 별세했다. 91. 지금즈음, 가족끼리의 시간을 즐기고 있음에 틀림없다. [격차]를 보완하고도 남을 부부애였다





기사 출처 : 朝日新聞天声人語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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